옛길 사랑채사랑채는 손님을 접대하며, 묵객들이 모여 담소하거나 취미를 즐기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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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옛길 - 옛길 이야기 보충 부탁 올립니다

가로메뉴 [경기옛길] 산하에 있는 [옛길 이야기]를 즐겨 보고 있으며 알찬 이야기 자료 DB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茶山 丁若鏞 선생의 '馬재마을' 이야기는 平海길 제3길에 있는 스토리 보드에도 간단히 나와 있지만 아래와 같이 두 줄만 언급이 되어 있고 작성 중 중단된 것으로 보입니다. 지지씨(ggc) 가이드에는 아래와 같이 잘 나와 있어서 일별(一瞥)할 수 있는데 이곳에도 보충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cheeky

1762년에 태어난 다산 정약용은 15년을 마재마을에서 살았다. 1801년 강진 유배 생활이 끝난 뒤 생을 마칠 때까지 살았던 곳도 여기다. 팔당댐을 끼고 다산로 526번 길을 따라 마재마을로 가는 담벼락은 사랑 고백들로 빼곡하다. 한쪽은 강, 한쪽은 벽. 상가도 없고, 차를 세워둘 갓길도 마땅치 않은 2차선 도로에 어떤 묘기를 부려서 저걸 썼을까?

 

다산은 1836년 2월 22일 75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마침 그날은 정약용과 그의 부인 홍혜완이 부부로 연을 맺은 지 60년을 축하하는 회혼례 날이었다. 정약용은 세기의 대학자이지만 동시에 다정한 남편이자 자상한 아버지로도 여러 일화를 남겼 다. 다산이 강진으로 귀양 간 지 7년째 되는 해, 홍혜완은 시집올 때 가져온 빛바랜 치마를 정표로 보냈다. 다산은 그 치마를 마름질해 아들에게 줄 서첩을 만들고, 남은 천에는 딸이 시집갈 때 그림을 그려줬다. 그는 일생 사랑했던 고향 마을이 ‘프러포즈’ 의 명소가 된 일을 어찌 여길까? 아마도 마땅한 일이라 여기지 않았을까.

 

정약용은 마재마을을 두고 “이 마을에서 취할 점은 오직 뛰어난 경치뿐”이라고 했다. 다산이 걸어 다니고 낚시로 소일하던 강가는 생태공원이 되었다. 그곳에 서서 억새들이 수런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강물을 보고 있자면 그 말이 맞구나 싶다. 마재마을 안에는 다산 생가인 여유당, 묘, 사당 문도사, 전시관으로 구성된 다산유적지, 형인 정약현의 묘, 활쏘기를 하던 임청정터, 소천나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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