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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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해길 제8길(고래산길) - 일제에게는 달갑지 않았던 구둔마을

무왕리의 거치리를 지난 평해로는 일신리 구둔마을로 들어섭니다. 일신리는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을 통폐합할 때 금동리, 지산리, 구둔리, 신촌리, 노일 등의 자연마을이 합쳐지며 형성된 마을이지요. 일신리라는 마을의 이름은 노일리와 신촌리라는 지명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본래 일신리로 합쳐진 자연마을들 중 으뜸마을은 구둔리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새로 이름을 지을 때 구둔리의 명칭을 쓰지 않았는지 궁금해지네요. 혹시 구둔리가 일제에게는 달갑지 않은 마을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애초 구둔리라는 이름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물리치기 위해 마을의 산에 아홉 개의 진을 설치했던 것에서 유래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아홉 구(), 진칠 둔()’, 그래서 구둔이라고 불렀다는 것이지요. 또한 1907년 정미의병이 결성되었을 때에는 이 마을에 있는 구둔치고개에서 의병과 일본군의 대대적인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일본군은 양평 양동면에 본거지를 두고 있던 의병대를 소탕하기 위해 구둔치를 넘게 되었는데, 이 고개에 매복하고 있던 150명의 의병과 격전을 치르게 되지요. 죽기 살기로 구둔치에서 의병들이 항전을 해준 덕분에 양동면에 집결된 의병진은 전열을 가다듬고 일본군 토벌대에 대비할 시간을 벌게 되었지요. 그러니 일제에게는 구둔이라는 마을 이름이 상당히 꺼림칙한 것만은 사실이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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