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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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길 - 신출귀몰한 장군, 신명(神明) 송문주

고려 고종 18년(1231) 몽고가 처음으로 고려를 침입하였습니다. 이후 40년 동안 여섯 차례에 걸쳐 고려를 유린하였습니다. 전란으로 인한 경기 지역의 피해는 매우 극심했는데, 안성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렇듯 몽고의 침입은 참혹했지만 고려의 항쟁도 치열 하였습니다. 최씨 무신정권은 몽고군이 지나가는 주요 길목에 방호별감을 파견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산성에 들어가 항전하도록 독려 하였습니다. 안성의 죽주산성 전투는 고종 23년(1236) 3차 침입 때의 일입니다. 죽주는 개경에서 충주를 거쳐 경상도 지방으로 내려가는 영남대로에 있는 교통 및 군사적 요충지였습니다. 최씨 무신정권도 죽주의 중요성 때문에 몽고의 1차 침입 때 박서 장군이 이끌었던 귀주성 전투에서 몽고군을 격퇴한 경험이 있는 송문주 장군을 파견하였습니다. 그는 몽고군이 죽주근처에 이르자 백성들을 죽주산성에 들어가게 한 뒤 만반의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전투에 대하여 『고려사절요』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몽고 군사가 죽주에 이르러 항복하라고 타이르므로 성중의 군사가 출격하여 쫒아 보냈더니, 다시 와서 포를 가지고 성의 사면을 공격하여 성문이 포에 맞아 무너졌다. 성중에서도 포로써 그들을 역공격하니 몽고 군사가 감히 가까이 오지 못하였다. 조금 후에 또 인유, 소나무 홰, 쑥풀 등을 갖추어 불을 놓아 공격하므로 성중 군사가 일시에 문을 열고 출전하니, 몽고 군사의 죽은 자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몽고 군사가 온갖 방법으로 공격했는데 무릇 15일 동안에 끝끝내 함락시키지 못하고 공격에 사용하던 병기들을 불살라 버리고 갔다.”
송문주 장군은 귀주성 전투에서 몽고군을 격퇴한 경험을 살려 몽고의 공격방법을 예측하여 방어함으로써 그들의 공격을 무력화시켰습니다. 휘하 군사들과 백성들에게 "오늘은 적이 반드시 아무 기계를 쓸 것이니, 우리는 마땅히 아무 방법으로 그에 응해야 한다" 고 미리 공격계획과 방어방법을 알려주었고 적이 오면 과연 그 말과 같았으므로 사람들은 모두 그를 신명(神明)이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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