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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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길 - 삼대를 이어져 내려온 효자 가문, 현풍 곽씨

15세기 중반부터 일죽면 장암리와 화봉리 송산마을과 광천마을에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던 현풍곽씨 가문에는 삼대를 이어 효자·효부가 있었습니다. 1665년(현종 6)에 태어난 곽천재(郭天宰)는 천성이 정직하고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였다고 합니다. 어머니 전주 이씨의 병환이 깊어지자 그 변을 맛보아 약의 효력을 살피었고 부모가 돌아가심에 여막살이 3년을 죽으로 연명하였습니다. 이 사실이 궁궐에 알려져 정4품 문관에게 주던 봉열대부(奉列大夫)의 품계를 받았습니다. 곽천재의 며느리인 이천 서씨 (利川徐氏) 또한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마을에 이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들은 숙종은 며느리에게 정려를 내렸습니다. 곽천재의 손자인 곽제두(郭齊斗) 또한 효자였습니다. 어느 날 노친을 모시고 가다 산적을 만나자 몸으로 호위하다가 세 번이나 칼에 찔리면서도 몸을 피하지 않자 적이 놀라 감탄하고 달아났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실이 왕에게 알려지자 호조좌랑(戶曹佐郞)에 제수되었습니다. 곽씨가문에는 효자 외에도 많은 충신들이 있었습니다. 효자 곽천재의 할아버지였던 장단도호부사 곽방건(郭邦鍵)과 아들 곽종문(郭宗文)이 그들입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의주 피난길에 오릅니다. 이에 곽방건은 아들 곽종문과 함께 어가를 의주까지 호종하여 곽방건은 호성일등공신 (扈聖一等功臣)에 곽종문은 호성삼등공신(扈聖三等功臣)의 칭호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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