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길 사랑채사랑채는 손님을 접대하며, 묵객들이 모여 담소하거나 취미를 즐기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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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옛길 걷기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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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 남태령역에서 내렸다. 오늘은 혼자 걷는 도보길이다. 옆으로 달리는 도로는 서울 손주집에 다니던 길이라 익숙하다. 고개까지는 가까운 곳으로 생각했는데 꽤 멀었다. 당시는 승용차로 다녔기 때문에 거리를 느끼지 못한 것 같다. 정상에는 南泰嶺이라는 글씨가 쓰여진 큰 표시석이 도로 가운데 세워져 있었다. 이곳이 서울시와 경기도 경계지역이다.

  남태령 전설 표시석이 나를 먼저 반긴다.


          남태령(南泰嶺) 옛 길
경기도 과천시 과천동 산119-1번지. 남태령 옛 길은 한양에서 三南(충청, 전라, 경상도)으로 통하는 유일한 도보길 이었다.
즉 이곳을 지나 수원, 안성을 거쳐 남쪽으로 갔으며, 반대로 과천에서 이 고개를 넘어 사당동, 동작동, 흑석동을 거쳐 노들나루(노량진)에서 한강을 건너 한양에 이르렀다.
원래 이 고개는 [여우고개]로 불리었는데 정조대왕이 사도세자의 능원으로 행차할 때 이 고개에서 쉬면서 고개 이름을 묻자, 과천현 이방 변씨가 임금께 속된 이름을 아뢸 수 없어 남태령(남행할 때 첫번째 나오는 큰 고개)이라 아뢴 이후 남태령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곳에 왔었다는 인증을 받기 위하여 스탬프함을 먼저 찾았다. 삼남길 리본 표시로 아래쪽으로 내려 가라는 것은 알 수 있었으나 스탬프함은 보이지를 않는다. 경기옛길 스마트 앱을 열었다. 잠시 내려가면 산길로 들어가는 길에 있으며 차가 가리고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친절한 안내가 되어 있다. 스탬프함 앞에는 무단주차 차량이 세워져 있었다. 삼남길의 첫번째 출발점이다. 정성스럽게 도장을 찍었다. 걷기 시작하니 몇 채의 집이 보이고 철쭉 등 봄꽃이 예쁘다. 모바일앱을 켜고 도로를 따라 내려 갔다. 이정표는 잘 되어 있어 걷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아스팔트 도로 옆을 한동안 걸었다. 차량은 많지 않다. 코로나19는 차량의 숫자도 줄인 듯 하다. 앱은 우측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산으로 들어간다. 한동안 산길을 걸었다. 관악산 둘레길 안내표시가 잘 되어 있다. 숲을 한동안 걸어도 경기옛길 안내 표지판이 보이지 않는다. 길을 잘 못 들어왔나 보다. 앱을 확인하니 진로와 조금 벗어나 있다. 방향이 동일한 길인데 경기옛길과 관악산둘레길을 함께 가는것도 좋지 않을까 제안하고 싶다. 숲에서 나오니 두 길이 만난다.

  온온사(穩穩舍)에 도착하였다. 조선시대 과천현의 객사였다. 당시 외국사신이나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의 숙소로 주로 사용하였다 한다. 조선의 왕 정조께서 사도세자의 현릉원 가는 길에 머물렀던 곳이다. '온온사'라는 이름은 정조가 이곳에서 매우 편안하게 쉬어갔다 해서 붙여진 것으로 현판의 글씨를 정조가 직접 썻다고 한다. 온온사 옆에 있는 스탬프를 찍고 다시 걷기 시작하였다. 주변은 녹지가 넓었다. 나무들이 많은 공원 같았다. 주택들이 여러 곳 있었고, 5층도 않되는 저층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 서울은 직장이고 이곳은 베드타운으로 보인다.

  큰 도로변을 걷게 되었다. 과천시청이 위치하고 있다. 청사 앞의 프래카드가 TV에서 보았던 뉴스가 되살아난다. '막개발 사업승인 남발 과천시청 박살내자' '과천 철거민 생존권 투쟁을 위한 결의대회'
옆에는 정부종합서울청사가 있었다. 청사 부지가 상당히 넓다. 걷던 길 옆에는 과천동주민센터가 있었다. 과천시청 등 세 청사가 비교가 된다. 관할행정구역의 차이도 있겠지만 규모가 너무 차이가 난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수원에서의 동사무소 신축시 크기의 법적 제한으로 아담한 사무실에 불과하였다. 정부종합청사라 크게 지어야 하는지 되묻고 싶다. 그런데 여기서는 변호사들이 팻말을 들고 연좌 시위를 하고 있었다. 변호사들은 우리 서민들은 쳐다보지도 못하는 엄청 높은 사람들이다. 무엇 때문인지는 묻고싶지도 않다.

큰 도로길을 계속 따라 내려온다. 안양시로 들어왔다. 도로변으로 택지개발이 엄청 넓게 지반공사를 하고 있다. 저렇게 집들을 많이 짓고 있는데 아파트 값이 몇 십억이니 이해가 안간다. 우리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 서울과 경기도로 몰려들어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까? 지방에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면 굳이 수도권으로 몰리지 않을 것 같다. 택지개발 반대편 도로변에 고층아파트 단지가 있다. 아파트 모양이 멋지다. 아파트도 특색있게 지으면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과 아파트를 바라보는 사람들도 즐거울 것이다.

  인덕원역에 도착하였다. 지하도 입구가 표시되어 있다. 이곳에 도착하기 위해 세 시간을 걸었다. 목적지가 볼품 없으니 힘이 빠진다. 고향은 오산시이다. 어렸을 때의 오산역은 교통 수단의 첫번째였다. 수원을 갈 때도 기차를 탔다. 수원역은 굉장히 컷었다. 도시는 역을 중심으로 발전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것에 비하면 인덕원역 입구는 보잘 것이 없다. 동탄역은 지하 6층이다. 지하에 있는 역 규모가 대단하다. 인간들의 삶을 본다. 내실은 없이 허세를 부리며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미세하지만 속으로 단단히 다져진 행복한 삶이 필요하다. 보이는인덕원역을 별 볼일 없지만 지하의 역 규모는 크다. 우리가 역세권 은 인정하고 있다. 지하역에서 밖으로 나오니 삼거리이다. 삼남 제1길 한양관문길은 혼자 걷는 길로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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