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길 사랑채사랑채는 손님을 접대하며, 묵객들이 모여 담소하거나 취미를 즐기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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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옛길 테마탐방 "의주길 옆 숲속 역사문화 동행" 후기

< 경기옛길 - 테마탐방 >

 

4 회 경기옛길 테마탐방

의주길 옆 숲속 역사문화 동행

 

2018. 10. 20. ( ) 의주길 2 구간 및 심리산 일원

( 고양 벽제관지 ~ 대자산 ~ 심리산 )

 

기옛길 네 번째 테마탐방은 고양 의주길로 떠났습니다. 벽제관지에서 시작해 대자산을 넘는 의주길 2구간을 비롯해 대자산 옆 심리산 숲길까지 걸어보는 일정이었습니다. 10km의 숲길을 고양시청 정동일 전문위원의 역사 강의와 함께 걸었습니다!

 

의주길은 중국으로 떠났던 사신단, 연행이 다녔던 길로 유명하죠! 오늘날 연행이 다녔던 주요 길은 국도 1, 통일로가 다니는 자동차 길로 포장되어 걸어서 다닐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에서는 사람들이 걸을 수 있는 길로 의주길을 새롭게 조성했는데요. 강의를 해주신 정동일 위원은 일반 백성들은 연행이 다녔던 길보다는 이러한 숲길을 더 이용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래도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가는 길을 걷다보면 양반들을 볼 때마다 절을 해야 하고, 못된 양반들의 수탈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일반 백성들은 숲길을 더 선호했을 것이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 벽제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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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제관지는 중국과 조선을 오갔던 사신들이 머물렀던 장소입니다. 지금은 그 터만 남아있지만 의주길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 고양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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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향교는 고양시 내에 남아있는 유일한 향교라고 합니다. 명륜당과 동재·서재, 대성전 등의 건물이 남아있습니다. 대성전 지붕 양측면에 비교적 크게 설치된 방풍판과, 배수를 원활하게 해주는 담장이 특징적인 향교입니다.

 


# 최영 장군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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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라는 말로 유명한 최영 장군은 고양시 대자산 기슭, 볕이 잘 드는 곳에 있습니다. 장군의 부인 문화 유씨와 합장한 묘이며 장군의 묘 위에는 아버지 최원직의 묘도 함께 있습니다. 사실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라는 말은 최영 장군이 아닌 아버지 최원직의 유언이라고 합니다. 최원직은 고려 말 사헌부 간관을 지낸 관리였기에 더욱 청렴하라는 유언을 남겼을 것입니다.

 

최영 장군은 기울어져가던 고려를 지탱한 명장입니다. 왜구와 홍건적의 침략에서 백성들을 구해준 수호신과 같았던 것이죠. 또한 청렴하고 강직한 성품 때문에 온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장군이 태조 이성계에게 비극적인 죽임을 당했을 때 수많은 백성들이 애도하고 슬퍼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왕조가 바뀌었음에도 최영 장군은 백성들의 수호신으로 마음 속 깊이 남아 민간의 무속 신앙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장군은 참형에 처해지면서 내 평생에 탐욕이 있었다면 무덤에 풀이 자랄 것이고, 결백하다면 풀이 자라지 않을 것이다라고 유언을 남겼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오랜 세월 동안 무덤에 풀이 자라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실 토성을 쌓듯 흙을 켜켜이 올리는 방식으로 무덤을 조성하면 풀이 잘 자라나지 않는다고 하는데요. 오랜 시간이 지난 오늘날에는 장군의 무덤에도 풀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최영 장군의 무덤 주위에는 많은 조선 왕족들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소현세자의 아들 이석견의 묘, 단종의 누이 경혜공주의 무덤 등이 남아있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이겠죠! 고양은 한양과 가까운 지리적 특성 때문에 조선 왕족들의 무덤이 밀집해 있습니다. 특히 대자산 인근에 무덤들이 많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 고양 경주김씨의정공파 영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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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산 숲길을 나오면 조선 후기의 고택, 영사정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영사정의 뜻은 영원히 잊지 않고 생각한다는 뜻으로 조선 숙종의 제2계비인 인원왕후 김씨의 아버지 경은부원군 김주신이 부친인 김일진을 기리기 위해 지은 재사( 齋舍 ) 건축물입니다.

 

건립연대가 명확하고 조선후기 살림집의 구조를 잘 나타내어 문화재자료 제157호에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고양시에서는 2014년 가능한 기존 부재를 최대한 활용해 고택을 복원했는데요.

 

인현왕후 사후 16세의 나이로 왕비에 책봉된 인원왕후는 경종이 즉위한 이후 대비가 되었습니다. 경종이 병약하고 후사가 없자 훗날 영조가 되는 연잉군을 지지해 양자로 입적시키고 정치적인 방패막이 되어줍니다.

 

왕권을 얻은 영조는 왕실의 최고 웃어른이자 자신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준 인원왕후를 극진히 모셨습니다. 그 흔적을 영사정에서 볼 수 있는데요. 영사정의 굴뚝은 일반적인 굴뚝보다 높이가 낮습니다. 영사정은 땔감으로 마른 장작이 아닌 숯을 태워 난방을 했다고 합니다. 숯을 태우면 연기가 높게 올라가지 않아 굴뚝을 높게 세우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데요. 영조는 값비싼 숯을 태울 수 있도록 영사정에 숯을 계속 보냈다고 합니다. 인원왕후의 친정 가문을 살뜰히 살핀 것이죠.

 

 

# 김주신 묘·김홍집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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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원왕후 김씨의 아버지 김주신의 묘와 갑오개혁 당시의 총리대신 김홍집의 무덤은 영사정 가까이에 있습니다.

 

김주신 묘는 조선 후기 양반의 무덤 양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묘입니다. 강의를 해주신 정동일 전문위원은 조선 후기 무덤의 교과서이다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는데요. 곡장과 그 기와가 아름답고 문인석의 조각기법이 뛰어난 무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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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집은 조선의 마지막 영의정이자 초대 총리대신입니다. 갑오개혁을 이끌고, 그로 인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격동의 인물입니다.

 

일제의 침략을 용이하게끔 조선의 제도를 개혁한 갑오개혁에 대한 비판으로 김홍집의 대한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었는데요. 최근에는 외세의 압력 속에서 고군분투한 정치가로 조심스럽게 재평가 받고 있기도 합니다.

 

김홍집의 부친 김영작이 김주신의 5대손으로 두 사람의 무덤은 가까이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살아생전 격동의 세월을 보냈지만 오늘날 김홍집의 무덤은 고요하기만 했습니다.

 

 

#심리산 숲길

 

김홍집 묘를 지나 마지막 일정인 심리산 숲길을 걸었습니다. 대장정의 마지막이기 때문에 처음보다 걸음은 다소 무거웠지만 가을 정취를 벗 삼아 힘을 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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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외국어고등학교 인근의 정류장에서 드디어 테마탐방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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