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리, 쌍문리라는 지명을 들어보셨지요? 이런 이름이 들어간 마을은 전국적으로 산재되어 있습니다. ‘이문(里門)’은 본래 마을 입구를 가로막아 낸 커다란 문을 뜻하는데, 마을의 출입문과 방책의 역할을 합니다. 밤에 사람들의 통행을 통제하고 도적을 막으려는 목적으로 세운 것이지요.
구리시에도 예전에는 이문리가 있었습니다. 교문동에 있었던 마을로 교문의 ‘문’이 바로 이문리의 ‘문’에서 따온 글자입니다. ‘교’는 백교리라는 흰다리마을에서 따온 글자이고요. 구리시청 맞은편에 이문안호수공원이 보이시지요? 이곳에 바로 이문리의 안골이 있었지요. 아무튼 이문이 있던 마을은 그 지역에서 가장 크고 번성했던 마을입니다. 그래서 옛 이문리 역시 여러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안골, 박촌, 샛다리, 도래미, 가능골, 갈매지 등의 자연마을들입니다. 이렇게 이문리에 자연 마을이 많았던 이유는 이 일대가 아차산 서쪽 자락에 위치하기 때문에 주변에 비해 지대가 높아서 홍수 때 침수 피해를 당한 한강과 왕숙천변인 토막리, 벌말, 돌섬 등지에 살던 주민들이 이주해왔기 때문이랍니다. 이왕 이사를 할 바에야 큰 동네로 가는 것이 일자리를 찾기도 쉽지 않았을까요? 이 중 으뜸마을이자 원조마을은 당연히 이문 안쪽에 자리 잡은 안골이지요. 구리시의 중심지가 교문사거리로 바뀐 뒤 한동안 안골마을은 한적한 주택가로 머물러 있었지만, 구리시청과 구리아트홀이 들어오면서 다시 구리시의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되찾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