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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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숨결을 품고 있는 인문지성의 성지, 통진 향교

지금 우리나라는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교육의 기회가 공평하지 않았습니다. 조선시대 교육기관은 주로 양반집 아들의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역할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교육 기관으로는 성균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균관이 문과를 준비하기 위한 최고의 교육 기관이었다면, 그 아래 소과를 준비하는 중등 교육기관에는 학당과 향교가 있었습니다. 학당은 서울에 있는 학교, 향교는 지방에 있는 학교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향교는 양인 이상, 8세 이상의 남자만 입학이 가능하였고, 여기의 유생과 생도를 교생이라고 하였습니다. 통진 향교는 고려 인종 시절에 처음 지었다고 전해지지만 확실하지 않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이 마을의 중등학교 노릇을 했지만, 일제 강점기에 폐쇄되었고 광복 이후 그 기능을 되찾았습니다. 풍화루를 지나면 앞쪽에는 교육 공간인 명륜당과 기숙사인 동재가 있고 뒤쪽에는 제사 공간인 대성전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학교의 구조는 이렇게 앞쪽에는 학문과 관련된 곳, 뒤쪽에는 제사와 관련된 곳이 있었다고 합니다. 통진 향교는 명륜당이 그렇게 큰 편이 아니지만, 대성전은 다른 향교에 비해 웅장한 편입니다. 대성전에 들어가 보면 공자와 더불어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통진 향교에는 400년이 넘은 커다란 느티나무가 보호수로 자리 잡고 있답니다. 400년 넘게 한 자리에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나무 앞에 서면 특별한 감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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