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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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흥길 제5길(반월산성길) - 영원히 그 자리에 있는 가치-포천향교

향교는 조선 시대 국가에서 설립한 지방 교육기관입니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중고등학교의 역할이었죠. 흔히 우리는 향교에 양반들만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양민 이상이면 향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생각보다 교육의 기회가 많았던 것이죠.

 

  향교에서는 보통 시나 문장을 짓는 공부와 유교의 경전 및 역사를 공부하는 경학을 배웠습니다. 게다가 향교는 교육기관인 동시에 조선 시대에 가장 중요했던 유교적 가치를 지켜내는 곳이기도 했지요. 제사를 지내고 위패를 보관하는 역할도 하였습니다.

 

                                          포천 향교

 

  포천향교는 경기도 일대에서 가장 큰 향교였습니다. 무려 1173년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지는데 국학이 성균관으로 개편되기보다도 이른 시기입니다. 고려 시대부터 지역의 교육을 책임져 왔던 것이죠. 실제로 포천향교를 거친 수많은 자제들이 관리에 선발되었습니다. 조선 전기에는 포천향교의 상징성이 있었기 때문에 당대 평민들의 사회에 삼강행실과 오륜을 알리는 중요한 역할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포천향교는 임진왜란 시기 한 번 소실됩니다. 일본군에 의해서 불에 타고 재건을 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한국전쟁 때는 포탄에 직격되어 향교 자체가 완전히 파괴되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이런 고난을 겪었지만, 지역주민들의 도움으로 다시 재탄생하였습니다. 이는 수많은 재난 속에서도 가치를 지켜내고자 했던 마음들이 모여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예전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선 시대의 수많은 관리들을 배출하고 삼강오륜을 전파하였던 포천 향교의 오랜 전통을 구현한 것입니다. 모습은 많이 바뀌었지만 그 내면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채로 오늘날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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