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조 때 국가의 기밀문서를 전달하기 위해 파발제도를 설치하였습니다.
파발은 빠른 정보, 문서의 전달을 위해 마련된 제도입니다. 말을 타고 달려 소식을 전하는 기발과 사람이 빨리 걷거나 달려서 소식을 전하는 보발이 있었는데, 한 사람이 온전히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문서를 릴레이 식으로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릴레이를 하기 위한 기착점을 참이라고 하는데, 기발은 25리(약 10km)마다 1참을 두었고, 보발은 30리(약 12km)마다 1참을 두었습니다. 기발에는 매 참마다 발장 1명(문서를 전달하는 군졸), 군인 5명이 있었습니다.
파발막 위치(포천시 자작동) 및 스탬프
당시 전국의 파발망은 서발, 북발, 남발 등 세 갈래로 짜여져 있었는데, 포천은 북발에 딸려 있었고, 경원, 아오지를 있는 통신망이었습니다.
*북발: 서울 – 두험천참(의정부) - 안기참(포천) - 아오지참(64참)
현재 걷고 있는 포천시 기산면 일대에 안기참이 있었습니다. 이에 현재 걷고 있는 노선의 구간명을 경기옛길 제4길 ‘파발막길’이라 이름 붙여지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