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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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흥길 제2길(천보산길) - 기구한 삶을 살아간 의순공주, 족두리 묘

천보산은 청나라의 조공으로 바쳐진 비운의 역사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족두리 묘 전경

 

   금오동 천보산에는 일명 족두리 산소가 있습니다. 주택가 뒤에 작은 묘입니다. 조선 효종 때 청나라에서 조선 공주와 혼인을 맺고자 합니다. 당연히 조선의 입장에서는 공주를 보내기 싫어했지요. 평범한 백성을 보내려고 하나 혹시나 발각될까 두려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종실인 금린군 이개윤이 자기 딸을 보낼 것을 자청하고 나서자, 조정에서는 그녀를 의순공주라 칭하고 사신과 함께 보냈습니다. 의순공주는 청나라로 가는 도중 평안도 정주에 다다르자 짐승보다 못한 오랑캐 놈들에게 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 가마를 멈추고 볼일이 있다고 속인 다음 가파른 벼랑아래 푸른 물에 몸을 던져 정조를 지켰다고 합니다. 물에 빠진 공주를 찾을 수는 없었고, 쓰고 있던 족두리만 건져 올려 천보산에 의관장을 해서 지금도 족두리 산소라 불립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전설일 뿐, 의순공주는 청나라로 시집을 갔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청나라에서 의순공주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고 하네요. 남편인 도르곤이 혼인 후 1년 만에 낙마 사고로 목숨을 잃은데다가 역모죄로 몰리며 의순공주는 부하 장군에게 넘겨집니다. 1년 후에 또 남편을 잃게 된 의순공주는 청나라에서 궁핍하게 살아갑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가 딸을 데려오는데, 조선에서도 환향녀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살아가게 됩니다. 게다가 왕의 명을 받지 않고 데리고 왔다고 하여 아버지는 관직을 잃습니다. 의순공주는 공주라는 이름도 빼앗기고 이용만 당한 채 젊은 나이에 죽고 맙니다. 이런 의순공주의 넋을 기리기 위해 의순공주대제라는 굿이 매년 이른 봄에 열린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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